17명을 살해한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 김대두 ] 그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썰프로 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대한민국을 한때 공포로 몰아넣었던
최초의 연쇄 살인마 김대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김대두
그는2004년 유영철 사건 발생 전까지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뺏은
살인범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정신으로 사람을
5~6명을 살해하거나
일가족을 몰살하는 범죄는
종종 터져 나왔지만
10명이 넘는 대량살인을
저지른 건 김대두가 처음이었다
김대두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1949년 10월 11일에 태어나
1976년 12월 28일 향년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한했다
1975년 전라도, 경기도, 서울을 돌며
1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이다
그의 살인 행적은 다음과 같다
- 1975년 8월 13일,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잠을 자고 있던 노부부를 습격하여 할아버지를 살해하고 할머니에게 상해를 입힘.
- 1975년 8월 19일,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의 구멍가게에서 일가족을 습격하여 노부부와 7살 손자를 살해.
- 1975년 9월 7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면목동(현 중랑구 면목동)으로 올라와서 홀로 사는 60대 노인 1명을 살해.
- 1975년 9월 25일,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현 평택시)에서 할머니와 손자들을 습격하여 5살,7살,11살
손자손녀 포함 일가족 4명을 살해, 11살 손녀는 집 밖의 나무에 묶여 강간 시도 후 살해 당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다른 3명의 희생자들은 장도리 손잡이가 부러질 정도로 내리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 1975년 9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현 구리시)에서 일가족을 습격하여 3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상해를 입힘
부부와 자녀인 3살 아기가 살해되었다
- 1975년 9월 30일, 경기도 시흥군 남면(현 군포시)에서 어머니와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습격하여
어머니는 강간 후, 아이는 내리쳐 살해. 아이의 사인은 장파열
- 1975년 10월 2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30대 부부를 습격하여 2명을 살해
- 1975년 10월 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골프장 캐디를 습격했으나 상해를 입히는 데에 그침
- 1975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공범으로 포섭하려고 했던 남성 1명을 살해
참혹한 살인을 저지른 김대두는 1975년 10월08일 검거되는데요
첫 살인 후 순천행 기차를탄 김대두는 우연히 교도소 동기를 만나게 되고 같이 돌아다니며
함께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다 범행 후 둘은 이렇게 된거 부자가 많은 서울에서
살인을 저지르자고 의기투합했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뒤에 서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에 둘은 함께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김대두는 단독으로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검거되기 하루 전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에게 접근하여 공범을 제의했지만
청년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자 그를 붙잡아 살해하고 그가 입고 있었던 청바지를 벗겨서 챙겼다
이후 김대두는 어리석게도 청량리역 근처의 세탁소에 피범벅이된 피해자의 청바지 세탁을 맡겼고
피 묻은 청바지를 맡기며 세탁소 주인에게는 "친구랑 싸우다가 코피를 흘려서 그 코피가 바지에 묻었다."라며
어설픈 변명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청바지에 묻은 피는 코피라 하기엔 광범위 했고 양도 많았다
결국 이를 수상하게 여겼던 세탁소 직원 하씨가 경찰에 신고했고 김대두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에 붙잡힌 김대두는 청바지에 묻은 피에 대해서 여러 차례 진술을 바꾸었는데 처음엔 세탁소 주인에게
말했던 것처럼 친구랑 싸우다가 피를 흘렸다고 주장 했다가 이후에는 동네 뒷골목에서 불량배들에게 구타를 당해서
피를 흘렸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후 담당사건 형사인 홍세호 형사와 함께 중국집에서 같이 탕수육과 술('빼갈')을 먹던중
체념한 듯이 "형사님, 사실 한 놈을 깠습니다.(죽였습니다)"라고 자백을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연쇄살인 행각을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김대두의 진술로 공범도 체포됩니다
체포 후 김대두는....
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 하였으며, 검거 이틀 후에 현장검증을 실시했는데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면서 아무렇지않게
히죽대며 웃는 모습에 전 국민이 경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김대두의 범행은 자체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외딴집에 사는 일가족만을 몰살했고 얼마 안 되는 돈을 빼앗아 가는 방식의 반복이었다
훔치러 들어간 집에 돈이 정말 한푼도 없어 얻은 물건이 없었던 적도 있었으며, 달랑 손전등 한개, 고추 15근을 들고
나온적도 있고 습격한 구멍가게 안에 있던 먹을 것들로 배를 채운 뒤 단돈 250원을 훔쳐 달아난 적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 강도살인인데 중상류층을 주로 노리던 이전의 강도 살인자들과는 범행 스타일이 달라
경찰수사에 혼선을 빚어 제때 체포할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표창원이 쓴 [한국의 연쇄살인]에서는
그가 배운 게 없어 그저 자기가 살아온 삶과 유사한 곳에서의 강도살인의 형태로만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옥중생활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수천 명을 신자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진심이었는지
사형판결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지금도 설왕설래가 있다고 한다 같이 수감됐던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금이나마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 있었던 것 같더라는 얘기가 있기는 하다
1심은 김대두와 공범에게 둘 다 사형선고를 내렸으나 2심에서는 김대두에게만 사형, 공범 김해운은
다수를 살해하긴 했지만 한 건만 가담했고 김대두의 반 강요로 이뤄진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대두는 공범이 사형을 면하자 상고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고 당시 죄질이 명백하고
다수가 살해된 사건의 주범은 판결이나온해나 혹은 다음 해 신속히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이듬해인 1976년 12월 28일 바로 처형되었다